(C) Kyungsub Shin, Cosmo 40 No.6, 2016, Pigment Print
(C) Kyungsub Shin, Cosmo 40 No.20, 2016, Pigment Print
코스모화학 공장단지가 인천 가좌동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1970년대이다. 1968년 설립된 한국지탄공업(주)이 70년대 초 한국티타늄공업(주)으로 사명을 바꾸며 인천에 공장을 짓고 본사를 인천 가좌동으로 이전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공장은 인천을 떠나기까지 40여 년의 세월동안 이 지역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2003년 사명이 코스모화학으로 변경되었다. 코스모화학은 오랜 기간 이산화티타늄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생산하는 기업이었으며 그 중 아나타제형 이산화티타늄 생산설비로는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규모를 자랑해왔다. 이산화티타늄은 착색력이 뛰어난 백색 안료로서 크게는 우주선이나 전투기부터 페인트, 타이어, 공구, 신발, 제지, 선크림 등 광범위한 분야에 사용되는 기초 소재이다. 이산화티타늄을 생산하면 황산철이 부산물로 남게 되는데 이 부산물 역시 버리지 않고 폐수처리제 등으로 재활용된다. 이렇듯 국내 유일의 이산화티타늄 생산시설로서 국내는 물론 해외에도 수출을 이어가며 95년도 ‘5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하기도 하는 등 긴 세월동안 화학 산업의 효자 역할을 수행하며 지역의 일자리에도 기여해오던 공장단지지만, 코스모화학의 전신인 한국티타늄 시절부터 환경오염의 원인으로 종종 지목되는 등 항상 지역으로부터 환영을 받아온 것은 아니었다.
공장이 이전하기 전까지 76,000㎡(약 23,000평)의 거대한 코스모화학 공장단지 내에는 45동 가량의 거대한 공장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나갔다. 그 중 Cosmo40로 재탄생한 40동 건물은 기사용된 황산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정제하는 리커버리 플랜트로 기능하였다. 2016년, 공장이 울산으로 이전을 결정하면서 2만 평이 넘는 대단지에 자리잡았던 공장들은 빠르게 철거되었다. 40동 역시 이들과 함께 철거될 예정이었으나, 공간의 맥락을 지키며 다른 방식의 용도를 생각한 지역 주민들에 의해 살아남게 되었다. 한 때 대규모 화학단지가 있던 이곳은 Cosmo40라는 명칭의 40이라는 숫자를 통해서 그 규모를 짐작할 따름이다.
안료 생산의 과정에서 기사용된 원료를 재생시키던 공장건물, 공단의 이전과 함께 없어질 예정이었던 플랜트에 다른 방식의 재생이 이루어졌다. 한때 부산물들을 쌓아놓던 창고 자리에 근린공원이 조성된 것도 흥미로운 점이다. 산업 도시에서 애증의 관계로서 지역과 동고동락을 함께 해오던 토양, 그리고 건물 위에 새롭게 펼쳐지는 일들 또한 지역의 생각과 의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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